코넬리우스 코모도어 밴더빌트의 증손녀 콘수엘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미국의 상속녀이자 사교계 명사였습니다.
어마무시한 재력가의 장녀 콘수엘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의 증손녀 콘수엘로는 1877년 3월 2일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아니 금 수저 베이스에 다이아몬드로 토핑을 가득 얹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콘수엘로의 아들 윌리엄 밴더빌트와 남부 출신의 부자 앨바 어크신 스미스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콘수엘로 엄마의 하드 트레이닝
콘수엘로 엄마는 엄격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일찍부터 딸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기 위함이었는지 집에서 가정 교사를 통해 교육을 받고 다국어를 배우며,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척추 아래로 강철 막대를 착용케 하였습니다. 딸이 규칙에 어긋하는 행동을 할 때면 가차없이 라이딩 크롭으로 채찍질을 당할 정도로 혹독하였는데요.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 엄마는 적어도 딸 만큼은 고결한 결혼, 그러니까 명망있는 집안에 시집을 보낼 나름의 야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작부인이 된 콘수엘로
콘수엘로는 사실 엄마의 혹독한 훈련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빼어난 미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쳐다 볼 정도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그녀 엄마에게도 그녀에게도 미모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콘수엘로의 엄마는 딸이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음에도 영국의 제9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 처칠과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그는 영국의 이름난 귀족 가문이었으며 방대한 토지를 소유했지만 유동 현금이 부족했습니다.
아마 영국 귀족과 미국의 부호와의 혼맥이 그녀 이후로 유행처럼 번진게 아닌가 하는데요. 본래 콘수엘로는 원스롭 리더퍼드란 미국인과 결혼 전제로 교제를 하고 있었으나 그녀 엄마는 무조건 귀족과 결혼시키기 위해 그와의 만남을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그녀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딸의 결혼을 막자 딸이 포기를 하였고 그렇게 콘수엘로는 사랑없는 결혼을 영국의 몰락한 귀족과 하게 됩니다.
콘수엘로 집안은 말버러 공작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철도 주식 250만 달러를 주었고 말버러 공작은 경제적 안정을 콘수엘로는 말버러 공작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혼 후 자유를 얻은 그녀
돈 많고 세상 아름다운 미인과 결혼했음에도 말버러 공작은 바람끼를 주체할 수 없었고 콘수엘로를 왜 사랑하지 않았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는데요. 둘은 사랑없는 결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견디다 못한 콘수엘로는 1906년 헤어지기로 하였고 15년 후인 1921년에 정식으로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1926년에 콘수엘로는 결혼 무효화를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그녀가 결혼 무효화를 주장한 이유는 엄마가 그녀의 희망과 억압으로 강제 결혼을 시켰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법원에서 부분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콘수엘로는 말버러 공작과 이혼 후 프랑스인이자 비행사였던 자크 발산과 재혼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콘수엘로는 자유롭고 호화로운 삶의 호스티스였습니다. 그러니까 사교계의 여왕이 된 것입니다. 콘수엘로는 남편 자크와 프랑스에서 사는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녀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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